진중권의 글은 대안이 아니다.

(펌) 진중권 글을 우석훈이 퍼온 것을 불펌;

 진중권은 이미 예전부터 실망했으니 할 말 없지만 이 글을 올리신 우석훈 교수님에겐 적잖은 실망을 느낀다.('88만원세대' 때문에 엄청 존경했는데 크흑 ㅠ_ㅠ)
 일단 진중권은 리포터가 아니다. 그는 리포터로서 지녀야 할 중립성이나 냉철함을 지니지 못했다.
 정말 리포터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다면 백분토론이나 끝장토론 같은 곳에 나와서 자기 말만 드높이고, 한나라당의원을 까대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는 행위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리고 촛불집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휴우~-_-;;
 일단 촛불집회는 광우병을 이슈로 시작했지만 모임 자체와 분위기는 재협상이라기 보다 이명박 퇴진이었다.
 5월 2일 처음 촛불집회를 주도한 세력이 여러분이 아는 안티이명박카페인 '이명박탄핵투쟁연대'였다는 거 아시는지?
 그리고 4월 6일부터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 국회에 이명박 탄핵을 위한 서명운동에 130만명이 서명한 거 기억하시는지?
 그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었던 박원석이란 사람이 1700여 시민단체를 모아서 5월 6일 만들어낸 대안세력이란 것이 '광우병국민대책회의'였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이명박탄핵이 아닌 광우병과 재협상으로 넘어간 것이다.
 우리 생각해보자.
 처음 이명박에게 열 받은 건 광우병 하나가 아닌 대운하와 민영화를 전부 포함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대질시켜서 이명박을 엄히 다스리는 게 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광우병대책위가 끊어버렸다.
 그때 얼마나 한탄스러웠는지 말이 다 안 나온다. -_-+
 처음부터 촛불집회가 광우병쇠고기가 아니고 이명박탄핵으로 갔다면?
 만약 광우병대책위가 나와서 대중을 휘두르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미 처음부터 핵심을 놓친 채 싸우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와서 비폭력이네 저항이네 평화시위네 해도 촛불집회가 산으로 가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시위를 문화제로 잡아서 축제를 만들다니...이게 될 법한 이야기인가?
 시위 도중에 술먹고 퍼진 사람들 봤을 거다. 진중권이나 다른 대책위들이 이런 거 잡아내서 걸러내는 거 봤나?
 주위에 장사하는 분들에게 장사 지원할 텐지 술은 팔지 말아주십사 이야기만 했어도 됐을 거다.
 그렇게 조중동과 한나라당에게 명분싸움 하려 했다면 이들부터 걸러내서 분위기를 제대로 잡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가 걸러내지 못해서 적들에게 해꼬지의 명분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진중권은 자신있게 이명박퇴진을 말하고 있는가?
 진보세력 중 그 누구도 감히 자신있게 이야기하지 못한 이 문제를 그가 이야기했다면 높이 평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구호가 상징적인 구호라니?
 이명박을 퇴진시켜야 이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현실을 추상으로 보고, 이명박이 알아서 항복할 것이라는 추상을 현실로 받아들인단 말인가?
 이명박은 절대 자기가 하려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에겐 자기만의 확신과 아집이 있다.
 그걸 위해 그는 서울시장 때부터 칼날을 세우고 닦아왔다.
 그런 그에게 주는 기회나 관용은 시간벌이 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진중권은 여기 와서 다시 훈수가 아닌 리포터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애매모호해진다는 말이다.
 
 이미 촛불은 멀리 돌아왔다.
 버스를 끄는 아주 미약한 저항마저 외면받는 절대비폭력시위란 이 분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정당정치를 이야기한다.
 도대체 누구를 지지하란 말인가?
 지지할 정당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난 진보신당조차 진보라고 보지 않는다.
 국민이 그들을 진정 필요로 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줄 때 그들은 계속 다른 이야기만 하고 있었고 정권장악만을 꿈꾸고 있었다.
 그들은 광우병대책위가 잘못된 길로 향할 때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국민의 이야기를 대변해주지 못했다.
 그저 애매모호하게 촛불 위에 올라탔을 뿐이다.
 진중권의 글에서 대안을 찾았다는 분들에게 묻겠다.
 정말 그의 글이 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고 풀어내었다고 보는가?
 자기자신과 진보세력에 대한 반성도 없이 도와달라는 글을?
 자기들이 어떻게 변하겠다는 말도 없이 국민들에게 훈수를 두겠다는 글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난 솔직히 이런 글 속에서 또다른 보수를 느끼기도 한다.
 
 촛불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계속된다.
 다만 이 촛불을 다시 돌아보고 스스로 반성해야 할 시기이며 변화할 때이다.
 우리가 처음 가두시위했을 때 목적을 잃고 자위하는 건 좋지 않다.
 지금 필요한 건 우리만의 자기만족이 아닌 확실한 성과여야 한다.

 진중권의 말 중 이거 하나는 옳다.
 대안은 거리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실질적 성과는 거리에서 찾아야 한다.
 
 
 

by 노마디스트 | 2008/07/09 17:36 | 트랙백 | 덧글(0)

촛불을 내릴 때? 촛불의 진정성을 찾을 때!

촛불을 내려야 할 때

이녁님의 글을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올 게 나오고 말았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추가협상이 차라리 되지 말기를 얼마나 바랬는 지 모른다. 하지만 합의가 잘 되지 않아 일찍 귀국하네 마네 하는 소식이 들리는 순간, '아, 저것들이 지금 극적타결을 만들기 위해 쇼를 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추가협상이 이루어지고 마치 대단한 일을 이룬 것처럼 말하는 김종훈 본부장의 모습을 보며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느꼈다. 실제로 추가협상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추가협상으로 촛불에 대해 대대적으로 회의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한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일명 '낚였다'라고 표현하면 정확하리라.

 

일단 이녁님이 이야기한 일차적 목적부터 짚어보자. 촛불시위를 참여하거나 지켜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이 싸움의 진정성에 있다. 촛불시위는 애초부터 어중간하게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위를 어중간하게 해석하고 콩고물에 침을 흘리며 다가온 무리가 있었으니 그것이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위)다. 지금도 이 대책위의 작태를 보고 있노라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자제할 수 없다. 애초에 광우병이란 모토를 걸고 나온 것 자체가 촛불의 본질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었는 지를 보여준다. 명박퇴진이란 말은 시위 도중에 나온 말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미 캠프 데이비드에서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을 때부터 나온 말이었다. 그것을 '협상무효 고시철회'란 말로 돌린 것이 대책위다. 이 문제가 광우병에서 시작된 것은 맞지만 본질은 이명박정권이 계획하고 있던 모든 실정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본질을 시위 내내 이루어낸 정책과 폭력진압 속에서 충분히 검증해주었다. 잊지 말자. 미국산쇠고기협정은 6월 항쟁 때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같이 시발점에 불과하다. 목적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추가협상의 성과를 이야기했다. 이것은 이녁님 스스로가 실효성이나 진정성에 대해 의심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애초에 미국산쇠고기협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가 더 중요하다. 원래는 국회의 동의를 충분히 거쳐서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넘어갔어야 할 문제를 두 국가 원수가 아무도 모르게 사인하고 추진해버린 사안이다. 이 협상 하나로 우리나라 농가의 목숨이 좌지우지할 수 있음에도 이명박대통령은 그들의 목숨줄에 철퇴를 가했다. 추가협상에서 실제로 기본협상 내용은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도 여전히 광우병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가 들어왔다고 해서 실제로 미국도축업체에게 가할 수 있는 페널티는 없다고 해도 옳다. 그리고 QSA제도를 도입했으니 안심할 수 있다고? 시장에 규제를 없애놓고 '그러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거야'라는 권장사항만 달아놓으면 시장이 자율적으로 잘못된 길을 걷지 않는다? 이런 협상의 결과를 믿으란 말인가?

 

이명박이 양보했다고 했다. 우습다. 이명박대통령이 고개 숙이는 짓을 한 것은 서울시장 때부터 있었던 일이다. 처음 중앙버스전용차로제로 교통이 마비에 이르자 잘못했다고 고개숙이던 일을 그새 잊었는가. 지금은 불편함에 익숙해져서 마냥 이용하고 있지만 덕분에 버스비 상승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고개만 숙였을 뿐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은 적 있었나? 민영화 정책과 대운하 사업을 양보했다고 보는가,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 의료민영화는 이미 제주도에서 추진 중에 있다. 대운하사업은 서울에서 하지 못하므로 대구 등 영남지방에서부터 지자체장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사업추진 중이다. 서울에서 하지 않으면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뿐 이미 모든 것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왜 모르나.

 

이명박대통령은 국민의 냄비근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서울시장 때 그렇게 욕하던 사람들이 경제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면서 경제살리기와 가장 거리가 먼 이명박을 찍었다. 이것이 이 대통령에게 커다란 교훈으로 남게 된 셈이다. '국민들은 금방 잊고 금방 변하며 눈에 보이는 것만 잘 꾸며도 역전이 가능하다' 처음 들고 나온 747전략이 바로 이 알량한 이 대통령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개만 숙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 그럴듯하게 바꾼다고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층들이 그러하고 특히 이명박이 그러하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그들이 정말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었음을 보여준 셈이다. 고소영 강부자만 아니면 그 내각은 제대로 된 내각이란 말인가? 왜 이러시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정몽준이가 "난 고소영 강부자 아닌데"라고 뻐기는 것 아닌가.

 

결국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어설프게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지 6월 항쟁이 말해준다. 그렇게 싸워서 대통령직선제를 이루었다고 좋아하던 사람들은 문민정부의 출범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선거조작으로 결국 노태우가 정권을 잡는 걸 지켜봐야 했다. 군부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바뀌기까지 다시 5년이 지체되었다. 이명박이 양보했다고 좋아라하다가 분명 뒤통수 맞는다. 왜냐? 이명박이 아직도 대통령이며 그 밑의 딴따라인 한나라당이 거대여당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두 세력을 어떻게 막을 셈인가. 사람들은 아직도 한나라당이 얼마나 더럽고 무서운 조직인지 잊고 있다. 그들은 수구보수조차 아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이익만 충족되면 무슨 짓도 할 수 있는 잡변단체다. 그들의 본질은 친일과 친군부독재였다. 지금은 촛불의 힘이 너무 거세니까 깨갱거리고 있지만 조금만 촛불이 흔들려도 국민을 '천민'으로 매도해서 생매장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다.

 

촛불은 지쳐있다. 사실이다. 진작에 명박퇴진 하나로 목숨걸고 싸워야 했던 문제를 계속 잘못된 본질과 시위형태로 싸우다보니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이겨야 할 싸움이 이렇게 늘어진 이유는 하나다.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싸움의 목적을 잘못 짚었던 탓이다. 쇠고기 재협상이 아니라 명박퇴진으로 싸워야 했으며 '비폭력'이 아니라 저항운동으로 갔어야 했다. 촛불문화제라니... 이게 무슨 말장난이란 말인가. 지금 우리는 집시법까지 어겨가면서 정부와 말 그대로 맞장뜨고 있는 거다. 그런데 그걸 축제란다. 전경한테 맞고 소화기와 물대포 맞아가면서 피터지는 축제를 했으니 이게 어디 제대로 된 모습이었단 말인가. 전방에 있는 사람들은 전경들과 싸우느라 죽어나가고, 교체 및 지원해주어야 할 중간의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부르고, 지속적으로 서포터해야 할 후방의 사람들은 주저앉아 술 마시면서 싸우는 모습을 불 건너 강구경하듯 보고 있으니 당연히 지칠만도 하다. 그래 놓고 추가협상이란 말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 그만 하자고 말한다.

 

지금 촛불을 내리면 회생 불가능이다.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이 무의미한 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싸우던 사람들이 영원히 이명박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다시 눈 가리고 귀 막을 거란 말이다. 왜 진정 피눈물 흘리며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지도 않고 함부로 촛불을 내리자고 말하는가. 이녁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분도 분명 일반시민이며 나름 지성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슬프고 화가 난다. 밤 늦게, 아니 아침까지 맨 앞에 서서 전경들과 대치해본 적 있으신지 묻고 싶다. 그렇게 싸우다 전경들이 들이닥치기 직전, 갑자기 사람들을 이끌고 사라져버리는 대책위의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본 적이 있는 지 묻고 싶다. 그 후 달려드는 전경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막아내는 데 뒤에서 "비폭력!" "전경들하고 싸우지 마!"라고 시위대에게 외치는 고함에 풀이 죽어 아무것도 못하는 그들의 답답함을 느껴보셨는가. 또한 무력하게 전경들에게 맞아가면서 밀려나야 하는 허탈함을 느껴보신 적 있는 지 묻고 싶다. 그러면서도 날마다 나와서 버티는 촛불이다. 이 모든 것을 다 느껴보신 다음에도 촛불을 내리자는 말이 나오는 지 묻고 싶다.

 

촛불은 잘못된 방향을 가고 있다. 당연하다. 목적이 잘못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촛불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촛불 들고 달려갔을 뿐이다. 그래놓고 촛불에 대한 의심은 무조건 알바니 프락치니 몰아서 생매장시키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진정성 없는 촛불은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이녁님의 글이 아니어도 내리자고 스스로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촛불의 진정한 목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공을 이끌고 이슈만을 쫓아다녔다. 이젠 핵심을 찔러서 순식간에 끝내야 한다. 목표는 명박퇴진이다. 그리고 비폭력이 아닌 저항시위로 가야한다. 그래서 단번에 청와대를 점령하고 이명박이 스스로 나오게 유도해야 한다. 그것이 아닌 촛불은 결국 패할 수밖에 없다.

by 노마디스트 | 2008/06/24 03:14 | 트랙백 | 덧글(0)

사형제 부활의 공포: 안양초등생 납치살인범 사형 확정

 경기도 안양에서 초등학생 이예진, 우예슬을 납치, 살해한 정성현이 18일 수원지검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정성현은 심문과정에서 후회하는 기색 없이 심신이 미약해서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제 무덤을 팠다.

 자기 변명하기 궁색한 잔혹한 살인마에게 능지처참도 아깝지 않다고 잠시 생각해봤다.

 하지만 아니다. 이래선 안 된다.

 내 가족이 살해당했다면 나도 저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었을 게다.

 지금 이 사형을 반대하면 세상의 모든 욕이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솔직히 살인자에게도 인권이 있다, 살인자 가족들은 무슨 죄냐는 등의 이야기는 관심 없다.

 이런 경우 정성현에게 인권을 부여해주고 싶은 마음은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눈곱만큼도 없다.

 개과천선의 가능성? 뭐 좋다.

 개똥만큼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조금은 인정해주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사형제 폐지나 사형 반대의 진정한 원인이 되기 힘들다.

 왜냐? 이런 것들은 반론의 여지를 늘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을 이야기하자면 이미 죽은 자와 피해자 가족의 인권도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

 개과천선을 이야기하자면 살인의 재범율이 높다는 현실을 외면할 꼴이 된다.(이런 점들은 다른 분의 의견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살인의 재범율...무시할 수 없는 상황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_-;;)

 무엇보다 왜 사형제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사형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형제도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된다.


 첫째는 보복기능이다.

 살인에 대한 형벌로 평생을 감옥에 가두고 세금을 축내느니 국가가 개인의 보복을 위임받아 실행한다.

 이로써 죗값은 공평하게(?) 치러지며 범죄는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른다는 것을 만인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둘째는 억제효과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 스스로 참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옳지 않다는 도덕적 억제와 저 사람을 죽이면 나도 죽게 된다는 제도적 억제다.

 도덕적 억제는 개인의 문제이니 국가가 간섭하기 힘들다.

 하지만 제도적 억제라면 강하게 조이면 조일수록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사형제의 기본 주장이다.


 셋째가 사회정화기능이다.

 살인은 그 재범률이 2003년을 기준으로 14% 이상이며, 우리가 흔히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정신병자들의 살인율은 80% 이상이다.

 결국 재미로 사람 죽여 본 놈은 또 사람 죽이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인간들은 우리 사회의 병균 같은 존재이므로 세상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죄 없는 일반시민들이 피를 보는 일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먼저 사형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인 억제효과를 말하자면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하겠다. 다음은 주간지 <시사-IN> 4월 23일자에서 받아온 자료다.



 보다시피 사형제도가 아무리 각기춤에 브레이크댄스를 펼쳐도 살인율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사람 죽일 때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범인들이 이성적일 거란 생각 자체가 큰 착각이다.

 사람 죽일 사람은 어떻게든 행한다.

 사형은 나중 문제일 뿐이다.

 결국 사형으로 살인을 억제할 수 있으리라는 건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일반인들의 착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사회정화기능은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사형제도의 본질을 잘못 보고 있는 전형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 아니면 도덕성의 결여?

 살인은 인간이 세상에 도래한 이래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는 숙제다.

 살인자들을 이 세상에서 싸그리 제거하면 살인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왜 살인이 일어나는지, 왜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고 드는 지 그 이유조차 풀지 못했다.

 그런데 사형제도로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니 이 얼마나 순진하고 단순한 생각이란 말인가.

 사형제도는 오늘날 자율규제의 역할보다는 정치적 이벤트의 역할을 더 많이 한다.


 사형제도야 말로 정치인들이 가장 정치적으로 이용해먹는 수단 중의 하나임을 사람들은 잊고 있다.


 정성현을 사형시키면 당장 이익을 볼 사람들은 누굴까?

 피해자들의 가족일까, 아니면 그것을 지켜본 일반 사람들인 우리?

 이 슬픈 사건에 수혜를 보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실은 있다.

 바로 현 정부다.(지금 여기서 쥐박이를 깔 목적은 아니므로 쥐박이 문제는 논외로 하자. 이건 일반적인 정치판의 특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므로...)

 당장 정성현을 사형시키면 지금 바닥을 치는 정부 지지율이 조금은 상승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미국에서 사형을 가장 많이 시킨 주는 보수꼴통과 마초들의 집합소인 텍사스주였다.

 주지사를 지낸 현존인물들 중 가장 많은 사형을 집행한 사람은 다름 아닌 지금 미국 대통령, 부시님이시다.-_-


 사형이 활발해지면 정작 그것에 벌벌 떨 사람은 살인자라고 보는가?

 아니다. 살인과 거리가 먼 일반인이다.

 사형이 늘어나면 살인율이 늘어나며 세상 살기가 각박해지고 있다는 묘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결국 이런 공포심은 정부가 국민들을 컨트롤하기 쉽게 만든다.

 독재정권에서 사람들을 가장 쉽게 흔들고, 자기 반대세력을 제거할 명분을 얻기 위해 사용한 것이 사형제다.

 특히 나라가 어수선할 때 등장하는 사형제는 미국산 쇠고기만큼이나 무서운 존재다.

 그래서 난 사형제 부활을 그 누구보다 걱정하고 무섭게 생각한다.

 사형제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슬픔과 분노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증서이기 때문이다.


 보복만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게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좋은 게 좋은 것은 아니다.

 난 사형제도를 인도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다. 살인마도 사람이다.

 그래서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게 어떻게 그들에게 인권말살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인권은 의무를 다하는 자의 몫이다.

 그 의무를 포기한 자에게 권리라니 우습다.

 하지만 인권말살이 사형으로 가는 것은 잘못된 수순이다.

 이미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답답하고 음침한 교도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것으로 이미 사회정화와 억제기능은 다 한 거나 다름없다.

 사형은 불필요한 옵션에 불과하다.

 그것은 양날의 칼이며 우리가 가장 멀리하고 억제해야 하는, 아니 없애버려도 되는 악법 중 하나다.


 난 정성현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다 허접 쓰레기에 불과하다.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끝내기에는 내가 그렇게 인도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정성현을 더 오래 살도록 해서 괴롭히자.

 고통없이 죽이기엔 그의 죄는 너무 깊고 무겁지 않은가.

 그것이 사형보다 훨씬 가혹한 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by 노마디스트 | 2008/06/19 12:30 | 트랙백 | 덧글(0)

초심잃은 촛불집회

처음 초중고생들이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4~5일을 제외하고 거의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촛불문화제에서 가두시위로, 가두시위에서 철야농성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긍정적으로 집회를 지켜보고 또 참여했다.

하지만 어제부터 시작된 72시간 시위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시위하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거 좋다.

밤새도록 죽어라 진지해지는 것도 솔직히 지치는 일이다.

즐겁게 하지만 끈질기게 남아서 자신의 의견을 PR하는 거 난 좋은 시위문화라고 본다.

하지만 어제부터 사람들이 거리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꼭 어제부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제부터 일반화가 된 거다.)

이건 아니다.

시위하면서 술이라니 어쩔 셈인가

문제는 그 놈의 ‘문화제’라는 용어다.(이건 분명 쇠고기 대책위원회의 실수다.) 

정부가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문화제란 이름으로 우리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시위다.

우리의 정당한 주권을 되찾기 위해 우리의 의견을 남들에게 당당히 선전하는 시위다.

누군가는 불법시위, 과격시위를 외치긴 해도 이 방법 외에 대안이 없는 걸 어쩌랴.

사람들이 보기 힘든 청계광장에 갇혀 소리 터지게 외친들 누가 알아줄 것인가.
정부가 눈 하나 깜빡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나올 수밖에 없었고 나온 이상 다시 청계광장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거다.
싸울 땐 싸워야 한다.

10만 가까이 모였던 사람들이 그 정도도 몰라서 시청에 모였겠는가.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아직 문화제란 용어가 남아있던 모양이다.

오늘에서야 그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았다.

우리 처음 촛불집회를 생각해보자.

누가 집회에서 ‘감히’ 술 마실 생각을 한 적 있었나.

이건 초심을 잃은 행동이다.

술 냄새 풍기면서 전경에게 시비 거는 일부 어른들을 저지한 것도 바로 우리다.

하지만 이제 모두 주저앉아 술을 꺼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쩔 셈인가.

'술을 마시는 것도 자유다. 먹고 취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달래기 위한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 라는 분을 위해 설명해주겠다.

첫째, 그러다 전경이 밀어닥치면 어쩔 셈인가. 술을 마시면 근육이 이완되고 피로가 몰려오기 쉽다. 지금 시위에는 여자들과 어린 학생들도 참가하고 있다. 술 먹고 그들을 지킬 자신이 있단 말인가. 자기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텐데.

둘째, 지금까지 전경에게 시비 걸고 싸움날 뻔한 사람들을 보면 절반 이상이 취객이었다. 술 마시면 감성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그렇잖아도 계속 이 시위를 폭력시위로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마당에 명분 줄 일 있나.

셋째, 시위 분위기가 흐려진다. 시위하다 피곤해서 자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벌써 한 달을 지속한 시위다. 힘에 부칠 수밖에... 하지만 술 먹고 지쳐 쓰러지고 헛소리하고 싸움벌이면 누가 그 시위를 아름답다고 할텐가.

난 그래도 우리 국민을 믿는다.

지금까지 촛불집회는 잘못할 위험성을 스스로 피해가며 진화해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 초심을 잃지 말자.

제정신으로 싸워도 이기기 힘든 명박이다.

술 같은 건 집회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즐기고 그날은 그냥 쉬어라.

시위에 오지 말고 다음을 위해 집에 가서 푹 자고 오는 것이 앞으로를 위해 더 좋은 일일 것이다.

by 노마디스트 | 2008/06/06 16:3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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