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S GONE? FREEDOM GONE!(참여와혁신 온라인 칼럼 4월 12일자)

REDS GONE? FREEDOM GONE!
자유와 열정을 강요하는 사회
[0호] 2010년 04월 12일 (월) 김관모 기자 kmkim@laborplus.co.kr

TV를 보다가 문득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장면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한 직장인과 축구경기를 봐도 시큰둥한 채 친구와 대화만 나누는 여대생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일상 속에서 흔히 보이는 피로와 식상함, 무심함에 젖어서 사는 사람들의 표본이죠. 그 광고에서는 이들의 모습에 ‘붉은악마’ 응원복과 액세서리를 그려 넣고 이렇게 묻습니다. 

‘REDS GONE?'

예전에 월드컵축구를 보며 열정과 흥분으로 하나가 됐던 그때를 다시금 일깨울 시기가 돌아왔다는 겁니다. 가끔 텅 빈 광화문 광장을 볼 때면 예전에 목청 터져라 응원하고 축제를 즐기던 그때가 그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 광고를 보고 있노라니 기대감보다는 왠지 부담감이 들더군요.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시기가 돌아왔으니 ‘당연히’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강요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왠지 그 축제의 장에 함께 하지 못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찝찝함이라니.

이런 감정은 저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제가 즐겨보는 사이트의 한 블로거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월드컵시기가 되면 늘 소외되는 느낌마저 들었다더군요. 더불어 영화감독 박찬욱의 '오마주'라는 책의 한 구절까지 응용해서 자신의 동의를 갈구했습니다.

“당신들 모두가 축구 얘기만 하고 나와 전혀 안 놀아주었기 때문이다.
재미난 티비 프로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놈이 내 차지붕에 올라가서 발을 굴러댔기 때문이다.
잠도 못 자게 경적을 울려댔기 때문이다.
나, 고독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저이긴 하지만 이 말에 백 배 만 배 공감! Why 모두의 '축제'에 그는 홀로 고독했을까?

  
ⓒ SK텔레콤

요즘 우리사회를 보면 ‘축제신드롬’에 걸린 것 같습니다. 어떤 사업을 벌이든 ‘축제’라는 단어를 만들어 대형공장에서 프레스기로 찍어내듯 축제를 제조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축제라는 글귀가 없는 곳이 없고, 이놈의 축제는 밤낮은 물론이고 사계절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의 탈피를 원한다는 것을 포착한 정치적, 상업적 마케팅이라고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알맹이보다는 껍질에 집착한다는 안타까움과 피곤함 때문이죠. 이들이 벌이는 축제의 절반 이상은 폐기처분되기 일쑤입니다. 지자체간 과잉축제 경쟁은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찌푸리게 하고 축제의 본 의미마저 퇴색시키기도 합니다.

‘신선함’에서 ‘식상함’으로

자, 월드컵축제만 놓고 생각해봅시다. 2002년 처음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였을 때는 무대나 축제마당이 갖춰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월드컵을 즐기는 사람들끼리 함께 보고 응원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모여들었지요. 차와 콘크리트에 묻힌 시내에서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축제를 창조해낸 셈이죠.

하지만 2006년 월드컵은 조금 상황이 달랐습니다. 예전처럼 축제의 장이 되기는 했지만 당시만큼의 신선함은 떨어지고 축제를 위한 축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처럼 자기가 가지고 온 음식물이나 쓰레기를 치우는 시민문화도 줄어들고 폭력사건이 난무하기 시작했죠. 화장실이 없어서 길거리에 일을 보고 사람과 무대장치에 치여서 경기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았죠. 

올해도 월드컵시즌이 되면 광화문광장 근처에는 월드컵축제라며 온갖 화려한 무대로 갖추고 잔치판을 벌이겠지요. 하지만 예전 같은 월드컵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이제 예전처럼 그곳에서 가서 붉은악마 옷을 입고 사람들과 함께 응원을 하고픈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문화이자 축제가 아니라 만들어놓은 식상한 축제가 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거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자연스러움이 축제가 아닐까요. ‘축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다시 말해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SK텔레콤

가끔은 그냥 내버려두세요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여유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조금만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려고 치면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온갖 해석을 붙여 비난하거나 과대포장하기 일쑤입니다. ‘빨갱이’라느니 ‘집단지성(웹을 통한)’이라느니 하는 것들이 그런 것의 예이지요.

또는 어디어디서는 ‘바람직한’이라든지 ‘건전한’이라는 말까지 굳이 사용하면서 모두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생각한 방법만 고수하는 것도 이런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해석에 따라 사람들을 좌지우지 하려고 합니다. ‘너희의 이런 모습은 이러이러하니 저러저러해야 한다’고 가르치려 드는 셈이죠.

자연스러운 자유와 열정은 누군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스스로의 힘으로 생겨나는 것이니까요.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붙이는 것은 사람 마음이지만 그 자연스러움 자체가 창조와 즐거움의 상징이라는 생각입니다.

진짜 축제를 원하시나요. 그러면 가끔은 그냥 내버려두세요. 당신들이 굳이 만들어주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여유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참여와혁신 www.laborplus.co.kr>

by 노마디스트 | 2010/04/19 21:05 | 시사입문Current Event | 트랙백 | 덧글(0)

May 10, 2009, Sunday......sickness

나옴이 급성간염으로 입원했다.
병원으로 달려갔고, 고열과 탈진으로 그을린 나옴의 얼굴을 봤다.
금요일엔 가벼운 몸살에 불과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단다.
레지던트에 따르면 급성 간염 증상이라 월요일에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나옴은 평상시에도 소식하는 편이었고 가끔 비실거리는 편이었다.
요즘 회사일이 늘어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알게 모르게 무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사 한두개가 녹슬 때는 모르다가 태엽하나가 멈추니까 모든 것들이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안타까워 하는 나옴의 어머니를 보며 예전 병원 신세 질 때가 스쳐갔다.
아픈 건 별로 좋을 게 없다는 것만 배우는 것 같다.
평상시에 늘 조심하지만 병은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오는 법이다.
내 몸 챙기는 것은 그리 귀찮거나 지겨운 일이 아니다.



by 노마디스트 | 2009/05/11 18:06 | 세상나기My Diary | 트랙백 | 덧글(0)

May 1, 2009, Friday......Mayday(Labor Day)


사진: <참여와혁신>(www.laborplus.co.kr)



이야기 하나...

양노총(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노동절 행사를 보고 왔다.
한국노총은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마라톤대회를 가졌다.
안치환과 이선희까지 초대하고 어마어마한 경품까지 풀었다.
참가인원만 13,000명. 노동자 가족들과 사회단체들이 함께 어우러진 흥겨운 행사였다.
모두가 웃고 즐길 수 있는 노동자들를 위한 노동자들의 잔치...
이날 한국노총이 내걸었던 노동절행사의 주제였다.

한편 민주노총은 여의도공원에서 노동절 대회를 열고 "이명박 정권에 맞서 작년의 촛불을 이어나가자"는 결의를 다졌다.
이날 행사는 대학생단체와 사회단체들의 공연은 물론 이명박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규탄하는 행사도 같이 진행했다.
1만여명의 노동자와 대학생, 사회단체들이 영등포역까지 거리시위를 했으며, 종로에서도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의 전경과 집회참가자들이 부상당했고, 수십명이 연행됐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연대해 투쟁할 시기...
5, 6, 7월 사회연대투쟁을 이어나가자는 민주노총의 주제였다.

'극과 극'이란 표현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게 있을까.
이날 행사는 두 노총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회사 선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두 노총이 내건 각자의 명분은 옳다.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현실반영의 행동은 틀렸다.

이에 대해 여러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누군가는 비판하며 욕설을 퍼부을 것이며
누군가는 지지하고 참여할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노동자와 일반대중의 삶은 더욱 척박해질 것이며
노사민정 합의의 실효성은 계속 약화돼 갈 것이다.
또 촛불을 비롯한 집회와 시위는 커질 것이며
경찰대응도 더욱 과잉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들인 시간과 에너지에 비해 얻은 것은 너무도 미미할 것이다.
사람들은 대안을 외치면서도 거리를 배회하거나 사건 하나하나에 핏발 올리고 싸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정부는 대책과 변화를 외치면서 자신들만의 관습과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시 폭력과 비폭력의 프레임에 갇힐 것이고
자신들이 무엇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이 정말 돕고자 했던, 지원하고자 했던 약자들은 다시 한번 잊혀지고 코너에 몰릴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시한번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속았다'고 느낄 것이며
사회적 양극화는 의식적 양극화로 변해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예상들이 틀렸기를 바란다.
내 생각이 어리석고 멍청한 생각이었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생각한 것들이 그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내가 현실을 보는 눈이 전혀 없는 엉터리 사이비이기를 바란다.

by 노마디스트 | 2009/05/04 14:07 | 세상나기My Diary | 트랙백 | 덧글(0)

April 28, 2009, Tuesday.....deadline

이야기 하나...

잡지사 마감이 임박했다.
저번주부터 하루 걸러 밤을 새가며 밀린 기사를 썼다.
어제도 회사에 남아 졸면서 기사를 쓰다가 모기에게 얼굴을 물렸다.
여하튼 오늘로 기사 다 끝내고 다음주는 4일 연속 휴일...
이번 금요일만 버티면 된다.
그런데 금요일이 메이데이 대규모 집회가 있지 않나.
민주노총아 적당히 좀 하자.

이야기 둘...
이번에 쓴 기사는 도자기 명장에 대한 이야기와 서울축협노동조합 이야기.
하나는 너무 정성 들여 써서 소설이 돼버렸고
다른 하나는 졸면서 자동기술을 하는 바람에 내용도 기억 안 난다.
기사 기획을 책 다 나오고 할 게 아니라 마감 끝내자마자 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인터뷰 하나 따 내기가 뭐 이리 빡세냐~!

이야기 셋...
이제 잘 거다.-_-
오늘은 예쁜 그림으로 스트레스를 달래며 숙면하고프다.

by 노마디스트 | 2009/04/29 00:43 | 세상나기My Diary | 트랙백 | 덧글(0)

꼭 잘라야 하나 ‘함께 살’ 방법은 없는가 (시사IN 4월 20일자)

결과가 조금 뻔한 기사가 되고 말았지만 생각할 여지가 많은 기사였다.
정말 큰 문제는 쌍용차문제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아까 밑에서 제시한 대안 부분은 진짜 대안이 되지 못한다.
내가 노동부 관계자라면 "밑에서 말한 사업은 이미 하고 있다"고 답할 것이다.
GM대우의 경우 비정규직이 늘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뭐 뻔하지. "그럼 모두 쫓겨나는 것보다 나쁘다고 보는가?"
그런데 지금 한 답변들이 또 나름 일리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단기적이건 중장기적이건 당장 '입구멍에 포도청'인 사람이야 저 일이라도 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해결핵심은 현재 기업생존을 시장정세로 볼 것인가 노동안정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또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쌍용차에서 근속근무 10년 이상의 사람들에게 쌍용차말고 다른 것을 찾으라고 압박하는 것은 잔인한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 쌍용차는 인생의 전부였을 것이며, 그간의 시간을 생각해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채 뒷짐지고 있단 것이 문제다. 그들 속에는 금속노조나 진보세력도 포함돼 있다.
선택은 이제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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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잘라야 하나 ‘함께 살’ 방법은 없는가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기업 회생의 ‘필수 조건’처럼 이야기된다. 하지만 2001년 대우차 사태 때처럼 그 과정은 언제나 파괴적이었고 많은 희생을 낳았다. ‘다른 대안을 찾자’는 목소리가 높다.
[84호] 2009년 04월 20일 (월) 15:04:41고동우 기자 intereds@sisain.co.kr
  
4월8일 노동자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 발표로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정말 이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까.

1997년 외환 위기 직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리해고 태풍’이 다시금 강력하게 몰아치고 있다. 전체 직원의 37.1%에 해당하는 무려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 쌍용자동차를 시작으로, 대우일렉트로닉스(1000명), 대우버스(507명), 위니아만도(97명) 등 전국 곳곳이 아비규환이다. 특히 이 중에는 사측의 결정에 반발하며 ‘파업 불사’를 외치는 노조가 적지 않아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사태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는다. 직원 1750여 명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정의 극한 대립으로 당시 인천 시내는 폭력이 난무하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GM대우가 노사 상생의 모델이라고?

지난 2월 일자리 나누기를 중심으로 한 ‘노사민정 대타협’에 참여하며 한때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던 재계 측은 “기업의 생존만큼 시급한 것은 없다”라는 반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동욱 경제조사팀장은 “일자리 나누기가 일자리 위기를 극복할 가장 유력한 방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용 유지보다는 감원이 비용 절감에 더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생사기로에 놓인 기업은 대다수 직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부를 감원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기업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이 개선되면 감원된 사람을 최우선으로 재고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선순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재계와 일부 언론이 그 ‘선순환’의 모범이자 노사 상생의 대표 모델로 꼽는 기업이 바로 GM대우(옛 대우자동차)이다. 이를테면 조선일보는 4월13일자 사설에서 “정리해고 이후 인수자 GM과 남은 근로자가 합심해 회사를 살려 5년 만에 복직 희망자 1605명을 모두 다시 받아들였다. 쌍용차노조도 ‘GM대우식 해법’을 돌아봐야 한다”라며 강경 투쟁을 선언한 쌍용차노조를 비난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들리는 게 사실이다. GM대우 부평공장의 한 노동운동가는 “정리해고 전 8000여 개였던 정규직 일자리가 지금은 6000여 개로 줄었다. 대신 비정규직이 1400여 명 늘었다. 정규직의 상대적인 안정과 노사 ‘상생’은 이런 비정규직의 확대와 희생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비정규직들은 예나 지금이나 밥 먹듯이 해고를 당하는 처지다”라고 전한다. 최근 가동률이 30%대까지 떨어진 GM대우 측은 정규직에겐 복지 축소와 전환 배치를, 비정규직에겐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법정관리 중인 쌍용차처럼 존립 자체가 어려운 기업의 경우, ‘구조조정(정리해고)→채권단(또는 정부)의 지원→매각’이라는 익숙한 순서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노조는 5시간 3조2교대 등 근무 형태 변경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사측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역시 대우차의 사례가 보여주듯 정리해고가 완결된 이후에나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당시 대우차노조는 최후의 카드로 무급 순환휴직까지 던졌으나 끝내 정리해고를 막지 못했다. 정부와 채권단, 또는 인수 희망자에게 정리해고는 마치 회생의 ‘기본 전제’처럼 인식되어 있는 것이다.

‘기업 주인 찾아주기’ 여전히 적절한가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진행돼온 이러한 기업 처리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의 주장이다.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는 노사 양측에 큰 상처를 남겼다. 당시 인천 시내(위)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정부와 자본 등 그간 한국 사회 주류의 방침은 ‘기업 주인 찾아주기’라고 부를 만하다. 위기에 놓인 기업에 정리해고 등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강제한 뒤 기업 가치를 회복시켜 매각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그 위험성이 확연히 드러났다. 쌍용차를 인수했지만 1조2000억원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기술 유출 논란까지 일으킨 상하이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만일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고 지역 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 해당 기업을 꼭 살려야 한다면, 지역기업화·국민기업화 등 다른 소유 형태도 고민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개인의 파멸뿐만 아니라 실업자를 양산하고 사회 불안을 초래할 정리해고를 꼭 하지 않아도 되는, ‘함께 살’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비단 쌍용차뿐만이 아니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먹튀’를 비롯해 ‘새 주인’의 횡포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정종남 투기자본감시센터 기획국장은 “은행과 증권사 같은 금융권에서 KT, 하나로텔레콤 같은 공공 서비스 영역, 만도기계·오리온전기·하이닉스매그나칩 등 제조업 부문까지 전 산업에 걸쳐 있다”라고 실태를 전한다.

또한 정리해고 실시가 단기 유동성 확보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기업 성과 개선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7년 한국노동연구원 윤윤규 연구위원이 펴낸 ‘기업의 고용조정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외환 위기 때 대규모 고용 감축이 기업의 생산성과 재무 성과 개선에 유의미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윤 연구위원은 이를 근거로 “현재 재무상의 어려움을 겪는 기업일지라도 단기적 효과를 겨냥하는 고용 조정보다는 교육훈련 투자 확대 등 중장기적 관점에서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경영전략이 좀 더 효과적으로 판단된다”라고 결론지었다.

지난해 한국빈곤문제연구소가 1998년 정부 정책으로 퇴출된 충청은행에서 일하던 임직원 945명을 10년 만에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응답자의 절반이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실도 놀라웠지만, 심리적 손상 정도를 알아보니 절망 상태에 이른 사람이 92.5%였고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사람도 60.5%나 됐다. 80.3%는 보복 충동까지 느꼈다고 했다. 폭력과 야만은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 끔찍한 결과가 뻔히 예측되는데도 집행하고 방관하는 것, 그게 폭력이고 야만이 아닐까.

by 노마디스트 | 2009/04/29 00:28 | 좋은기사 밑장빼기Article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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